눈이 또 왔으면

지난 토요일이었죠. 오랜만에 제법 눈 다운 눈이 달라스 지역에 내려 많은 사람들이 반가워했던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급하게 밖으로 나가 쌓이지도 않는 눈을 맞으며 눈사람을 만들겠다고 신이 나서 뛰는 모습을 보며 흐뭇한 마음에 잠깐이라도 눈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일절 밖으로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저 창문을 통해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1년에 한 번 밖에 오지 않는 눈을 보며 밖으로 나가 잠시라도 눈을 맞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2초 정도 제 머리를 스쳤지만 한 발자국도 떼지 않았습니다. 책상에 앉아 설교 준비를 하며 창문으로 보이는 눈을 한 2분 정도 바라봤을 뿐입니다. 당시에는 밖이 춥기도 하고 할 일도 있었기 때문에 아이들과 함께 밖에 나가보지 않은 것이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관점으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분명히 몇 년 전만 해도 눈이 오면 꼭 밖으로 나가 내리는 눈을 손에 받아보기도 하고 옷 위에 쌓인 눈의 결정체가 그대로 있으면 사진을 찍어 보기도 하고 자동차 위에 조금이라도 쌓이면 두 손에 뭉쳐 보기도 했었는데 이번엔 그저 바라보기만 한 것입니다. 귀찮았던 것 같습니다. 보는 것은 좋지만 굳이 손으로 만져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결혼생활 초기 캐롤튼에 살 당시 골프 공 만한 우박이 내릴 때도 냄비를 머리에 쓰고 밖에 나가보곤 했던 저희 부부인데 저보다 한참 젊은 아내도 이번 눈을 보면서 “학부모들이 레슨들을 캔슬하면 어떡하지?” 하고 몇 번이나 걱정했던 것도 생각이 났습니다. 늘 눈이 내려 모든 것이 불편해지는 동부도 아니고, 1년에 한 번 오는 오랜만의 눈을 보며 반가움을 느끼기 보다는 현실적인 불편함과 적당한 무관심 그리고 그 날의 일정과 수입이 더 중요했던 저나 아내의 모습은 어쩌면 어린시절 ‘인생 참 재미 없게 산다’ 며 이해하지 못했던 그 어른들의 모습과 전혀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습니다. 물론 눈이 오면 밖에 나가 눈을 맞아봐야 한다는 법도 없고 사람의 취향에 따라 오랜만에 내리는 눈이라 해도 별로 반갑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은 그럴 수 있다고 해도 저는 분명히 변한 것입니다. 어린 시절 ‘인생 참 재미 없게 산다’고 느꼈던 그런 모습의 어른으로 변한 것입니다. 그렇게 변하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었는데 말입니다.


2019년을 마무리하고 2020년이 시작되면서 많은 분들과 나눈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도 이런 소망을 품었습니다. “자유와 평강을 누리며 융성해지자”. 움츠러들거나, 낙심하거나, 게을러지지 말고 하나님께서 주신 삶을 하나님 안에서 풍성하게 누리는 한 해가 되기를 소망했습니다. 사탄은 계속해서 미혹합니다. 안 가져도 되는 경계심을 갖게 만들고, 두렵게 만들고, 지나치게 조심스러워 하도록 불안감을 조장합니다. 환경이 조금만 어려워져도 주눅들게 하고 장애물이 조금만 보여도 게을러지게 합니다. 패배적인 생각들을 자극하여 사람을 피하고, 도망치고, 외면하도록 유도합니다. 이런 모든 생각들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풍성한 계획을 방해하는 것들이 됨을 잘 알면서도 자꾸만 같은 일들이 반복됩니다. 분명한 것은 가만히 앉아 있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물론 때에 따라 조금 천천히 가야할 때도 있지만 주눅든 마음을 가지고 멈춰 서면 그 곳은 하나님의 따뜻한 품이 아니라 공허감으로 텅 비어버린 내 마음속의 어두운 터널이 될 뿐입니다.

눈이 또 한 번 오면 좋겠습니다. 눈이 또 오면 아내와 아이들 손을 잡고 함께 밖으로 뛰어나가 신나게 눈을 맞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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