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이 필요한 우리

2020년 대통령 후보를 가려내기 위한 선거전이 본격화 되어가고 있습니다. 평상시 정치에 그다지 관심이 없던 편이지만 대통령 선거때가 되면 후보들에게 조금 관심을 가지게 되어 양당의 후보자 토론회를 인터넷 “짤방” 들로 살펴보곤 합니다. 누가 토론을 잘 했고 못했으며 그 내용이 어땠는가는 이 지면을 통해 다룰 이슈가 아니겠죠. 그런데 토론회에 참석한 후보자들의 실력보다 더 저의 관심을 끄는 부분은 이들 후보자들을 후원하는 시민들입니다. 정치인들의 행보나 그들의 연설에 비교적 회의적인 저는 그들이 하는 말이나 정치적 행보를 곧이곧대로 믿는 편이 아닙니다. 그들의 말이나 행동들은 늘 정치적인 계산을 기본으로 한 연기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들의 말이나 정치적 행보를 보며 감동받고 환호성을 보내는 사람들의 모습이 측은해 보일때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대통령 선거전이 가열되어 갈 때 각 당을 후원하거나 특정 후보자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모습보면서 드는 생각은, 어떤 배경(정치적인 계산, 개인적 이익, 애국심)이 깔려있는 지는 몰라도, ‘참 열정적이다’ 라는 것입니다. 함께 대화를 나눠보지 않고는 진짜 동기를 알 수는 없지만 무언가에 저런 열정을 가지는 자체만으로도 멋지다는 생각이 듭니다.


무언가를 판단하고 결정할 때 충분히 이성적인지, 제대로 분석했는지, 진심인지 등도 매우 중요한 이슈이지만 내가 믿는 무언가 때문에 그 정도로 열정을 보일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저는 부러웠습니다. 후보자들을 지지하는 많은 사람들이 라디오 인터뷰에 목이 다 쉰채로 자신의 후보자를 지지하는 의견들을 피력하는 모습들이 신기하기까지 했습니다. ‘저런다고 저들 개인의 삶이 행복해지고 만족스러워질까?’ 라는 지극히 이기적인 생각들이 제 뇌리를 스쳤습니다. 살아오면서 받은 상처와 실패에 대한 기억들 때문에 너무나 냉소적이고 회의적으로 변한 저의 모습이 겹쳐져 보이는 순간이었습니다. 어느 누구보다도 열정이 많다고 자부했었는데 웬만한 일들에는 타협적이거나 관심조차 없는 소극적이고, 비겁하며, 이성과 통찰력, 지혜와 같은 단어들로 포장된 이기적인 겁쟁이로 변해버린 40대 가장의 모습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광신적이라는 비판을 받아왔죠. 저도 ‘예수천당 불신지옥’ 푯말을 가지고 길거리로 나온 사람들의 모습에 알러지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무언가 정말로 믿고, 정말로 사랑하면 그 대상을 향한 열정이 다소 ‘광신적인’ 모습으로 표현될 때도 있는 것입니다. 교회가 처음 세워질 때 성령을 받고 거리로 쏟아져 나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던 사도들과 초대교인들의 모습이 조금은 ‘광신적’이 아니었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술에 취한 사람들처럼 보였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겠죠.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과 사랑이 ‘진짜’이기 때문에 주체할 수 없는, 복음을 향한 열정들이 터져나왔던 것입니다. 물론 늘 그럴 수는 없겠지만 지, 정, 의로 이루어진 우리이기 때문에 열정을 바탕으로 한 결단들도 우리의 신앙건강에 필수적인 요소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여호와의 법궤가 들어오는 것을 보며 미친 사람처럼 춤을 추던 다윗왕의 열정이 저에게 그리고 이 시대의 수 많은 냉랭한 그리스도인들에게 필요하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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