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맞는 걸까요?


최근 텍사스에 수차례 태풍이 몰아쳐 많은 피해를 내고 있습니다. 특히 토네이도를 동반한 태풍이 많았다고 하는데요. 텍사스에는 1년에 평균 140-150개 정도의 토네이도가 발생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올해는 6개월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143개의 토네이도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텍사사를 제외한 나머지 주의 평균 토네이도 횟수가 25회인 것과 비교하면 텍사스의 넓은 면적을 감안해도 텍사스에서 발생한 토네이도의 숫자는 독보적으로 많습니다. 텍사스의 9개 카운티를 재난지역으로 선포한다는 뉴스도 있었습니다. 올해 비가 많이 온 것에 대하여 언급하는 두 명의 그리스도인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한 분은 저와 마찬가지로 캘리포니아에서 살다가 최근에 텍사스로 이사 온 분인데 쏟아지는 비를 보며 캘리포니아는 몇 년 동안 가뭄 때문에 고생하고 있는데 텍사스에는 이렇게 비가 충분히 온다며 확실히 하나님께서 텍사스를 사랑하시고 복을 주시는 것 같다고 감탄했습니다. 또 한 분은 근심이 잔뜩 담긴 목소리로 최근 텍사스 여기저기서 들리는 반 기독교적인 목소리들 때문에 하나님께서 텍사스를 벌하시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누가 맞는 걸까요? 결론적으로 이야기하면 누구의 이야기가 ‘맞다’ 또는 ‘틀리다’ 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맞다’ 또는 ‘틀리다’ 라고 이야기 하는 순간 또 다른 ‘맞고’ ‘틀림’ 의 명제가 되어버릴 것입니다. ‘맞다’ 또는 ‘틀리다’ 를 이야기하기 전에 일단 다행으로 여겨지는 것은 그 분들이 적어도 하나님께서 자연의 주관자가 되신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자연의 주관자가 되십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 한 마디로 바람과 파도를 잠잠케 하셨습니다. 텍사스에 이렇게 비가 많이 온 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뜻 가운데 일어난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자연의 주관자가 되신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또 다른 사실을 말한다는 점도 기억해야 합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주관자가 되시기 때문에 많은 경우에 주관자가 아닌 우리는 하나님께서 왜 그렇게 하셨는 지에 대하여 잘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잘 모르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 많은 경우 우리는 안다고 생각하고 결론 내리고 싶어합니다. 혹시 하나님께서 주관자시라는 사실에 감탄하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 보다 비가 온 이유를 내가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여기기 때문은 아닐까요? 마치 하나님께서 내가 이해하는 범주 내에서 움직이시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말입니다. 만일 비로 인한 피해가 있다면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고, 충분한 비로 인해 땅이 비옥해지고 농사가 잘 된다면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몫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하나님께서 비를 왜 주셨는지를 분별해내는 일은 우리의 몫이 아닙니다. 우리는 세상의 주관자도 자연의 주관자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비구름이 걷히고 조금씩 맑은 하늘이 드러나는 것을 바라보며 이사야서의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는 말씀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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