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4월

T.S. Elliot 의 ‘황무지’라는 시의 제 1부 ‘죽은 자의 매장’ 이라는 시에 보면 4월을 잔인한 달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만물의 싹이 트기 시작하는 아름다운 생명의 계절 4월에 세계 1차대전의 폐해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어버린 슬픔과 허무 그리고 그 당시 유럽문명의 중심지인 런던에서 메마르고 생명력 없는 일상을 꾸려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4월을 잔인한 계절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어린 싹이 돋아나 세상에 새로운 생명체로서 자리를 잡아가야 하는 4월은 언제나 잔인한 계절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아름답게 보이지만 세상이라는 혹독한 환경 속에서 생명을 보존하려 안간 힘을 써야만 하는 현실이 잔인하다고 말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할지도 모릅니다. 2000년 전에 잔인한 4월을 살고 계셨던 분이 계십니다. 생명을 위해 생명을 내어 놓아야 하셨던 그 분은 어쩌면 이 잔인한 4월을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살고 계셨을 것입니다. 십자가로 향한 그 분의 발걸음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이민자로 살아가며 황무지처럼 느껴지는 이 땅에서의 삶이 잔인하다고 느끼는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시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생명을 내어놓은 분이 계시다는 사실은 우리가 붙들어야 할 유일하고도 절대적인 소망의 Source 입니다. 우리의 현실이 더 이상 잔인하지만은 않은 이유를 우리는 사순절기 중에 분명히 발견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12:2-3 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신 예수를 바라봅시다. 그는 자기 앞에 놓여 있는 기쁨을 내다보고서, 부끄러움을 마음에 두지 않으시고, 십자가를 참으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하나님의 보좌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자기에 대한 죄인들의 이러한 반항을 참아내신 분을 생각하십시오. 그리하면 여러분은 낙심하여 지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부활주일을 한 주 앞둔 오늘 그리스도를 깊이 묵상함으로 그 분께서 십자가에서 바라보셨던 그 기쁨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확인하고 각인하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뒤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