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가를 치뤄야 하는 이유

지난 금요일은 3.1 운동 100주년 기념일이었습니다. 3.1 운동은 일제 강점기에 있던 조선의 백성들이 제국주의에 항거하여 한일병합조약의 무효 및 한국의 독립과 선언한 비폭력 만세운동이었습니다. 3.1 운동 대신 3.1 혁명 정도의 표현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시 제국주의의 침략과 지배를 당하던 아시아의 약소국들 가운데 범 국가 적인 항거의 움직임이 일어났던 전례가 없었다고 합니다. 민족대표 33인뿐 아니라 우리가 잘 아는 유관순 열사와 같은 분들이 이 운동을 이끌어 갔습니다. 일본인 학자 야마테 겐타로에 의하면 3.1 운동에 참석한 사람의 숫자가 50만명 이상일 거라고 추정합니다. 많은 학생들이 참석한 운동이었으며 민족대표 33인의 다수 및 3.1 운동의 진두에는 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있었다는 것 또한 우리가 잘 아는 사실입니다. 3.1 운동의 주역들과 같이 국가의 주권을 회복과 독립을 위해 싸운 사람들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우리는 없을지도 모릅니다.


옳다고 믿는 바를 이루기 위해서는 이렇게 대가를 치룬 사람들의 흔적이 있기 마련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먹고 사는 사람들이지만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치룬 대가가 빠트릴 수 없는 귀한 가치임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물론 변절한 사람들도 있고 또 친일행위로 매국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또 만세를 부르던 사람들을 멀찍이서 뒷짐 지고 바라보기만 하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젊은 열사들이 붙잡혀 고문을 당하고 죽어가는 가운데에도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의 살 길만 찾던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불의를 지켜보지만 않고 느끼고 생각하고 움직였던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결국에 대한민국은 주권을 회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강대국들의 틈에서 그들의 결정만을 기다린 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없었을 것입니다. 옳다고 믿는 바를 지키고 전하는 일에는 그렇게 희생이 뒤따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는 지난 2천년간 수많은 어려움을 직면하는 가운데 지금까지 왔습니다. 교회의 시작이 그러했습니다. 핍박 가운데 시작되었습니다. 예수께서 세상의 거절과 수치와 죽음을 경험하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만약 교인들이 교회가 직면한 어려움을 외면한 채 이기적인 생각에만 사로잡혀 있었다면 오늘날의 교회는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일하십니다. 사람들을 통해 일하십니다. 구원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해 주시는 소망을 지키고 전하기 위하여 자신들의 삶을 내어놓지 않았다면 오늘의 우리는 없을 것입니다. 지역사회를 아름답게 섬기며 역동적인 사역을 감당하고 있는 건강한 교회들의 역사가 결코 편하고 화려하지 않았음을 우리는 잘 압니다. 교회가 건강하게 서 가도록 보이는 곳에서 또 보이지 않는 곳에서 피땀 흘린 사람들의 헌신과 희생이 없이 존재하는 건강하고 아름다운 교회는 세상에 단 하나도 없습니다. 그것이 죄로 인하여 타락한 세상에 소망이 전해지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안전하고 편한 길은 우리를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지 않습니다. 어렵고 벅찬 대가를 치루더라도 예수께서 가신 그 길, 오직 그 길 만이 우리를 생명으로 인도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우리가 가야하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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