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병을 완전히 치유하기

아이들을 학교에서 픽업하여 집으로 가는데 하성이가 묻습니다. “아빠, 응, 응, 하나님이가 왜 킹코브라 만들었어?” 쌍둥이들이 학교에서 빌려온 책에서 킹코브라 사진을 본일이 있기 때문에 당연히 책에서 본 것을 물어보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질문 때문에 제가 얼른 답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이가 응, 응, 왜 킹코브라 만들어서 아담하고 이브한테 lie 했어?” 아마 자신들이 읽고 있던 뱀에 관한 책과 제가 들려준 창세기 3장 이야기를 연결했나 봅니다. 이 질문은 창세기 3장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당연히 할만한 질문이지만 답을 하기에 간단한 질문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왜 뱀을 만드셨어?’ 라는 1학년생의 질문은 ‘하나님이 왜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도록 방치하셨는가?’ 또는 ‘하나님은 왜 뱀의 몸을 빌린 사단을 제거해주지 않으셨나?’ 등의 질문으로 이해할 수 있는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아담과 하와가 죽게 된 것, 그들이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것 모두 하나님 책임이 아닌가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질문은 인류에게 굉장히 오래된 질문입니다.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은 우리가 천국이 아닌 이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이 세상의 논리와 생각들로 판단하기 시작하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들이 온전히 다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C. S. Lewis 는 천국을 위해 창조된 우리가 이 세상에서 경험하는 불일치성을 ‘오래된 병’ 이라고 표현합니다.

모르긴 몰라도, 아마 현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천국’에 대해 듣는 두 가지 말을 조화시키는 대 어려움을 느낄 것입니다. 한편으로 천국의 삶은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 하나님을 뵙는 것, 끝없는 찬미를 뜻한다는 말을 듣습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천국의 삶 역시 몸으로 향유하는 삶(bodily life)이라는 말을 듣습니다. 우리가 현세에서 지복직관(至福直觀) 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것처럼 느껴질 때를 보면, 그 순간 우리 몸은 그런 일과 거의 무관한 것으로 느껴집니다. 또 영생을 (어떤 종류의 몸이든 하여간) 몸으로 향유하는 삶으로 생각해 보려 하면, 우리가 더 중요한 것이라고 느끼는 – 응당 그렇게 느껴야 합니다 – 신비적 접근과는 거리가 먼, 플라톤적 파라다이스나 헤스페리데스(Hesperides)의 정원 같은 것을 막연히 떠올리기 십상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불일치성이 궁극적인 것이라 한다면, 하나님이 우리 영들을 자연계 질서 속에 들여놓으신 것 자체가 하나님의 실수라는 말이 되고, 이는 터무니없습니다. 우리는 그 불일치성이 실은 ‘새 창조’가 치유하게 될 무질서 중 하나라고 결론지어야 합니다. 몸이, 또 장소성(locality)이나 이동성(locomotion)이나 시간 같은 것이 지금 우리에게, 최고 경지의 영적 삶과는 무관한 것으로 느껴진다는 사실은 어떤 증상(symptom)입니다. 영과 자연이 우리 안에서 다투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앓고 있는 병은 바로 이것입니다

-C. S. Lewis의 <기적> 16장 새 창조의 기적 중에서

이해하기가 조금은 까다로운 개념일 수 있지만 결국은 죄의 결과로 우리가 경험하는 세상에 대한 몰이해와, 이질감, 불일치성 등을 온전히 해결할 수 있는 분은 하나님 한 분 밖에 없습니다. 이 땅을 사는 동안 다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새 창조로 예비하실 도시, 우리의 본향, 새 하늘 새 땅에서 “하나님이가 응, 응, 왜 킹코브라를 만들어서 아담하고 이브한테 lie 했어?” 라는 질문이 온전히 답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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