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시력

제가 한국에서 머무는 동안 묵었던 곳은 사촌동생 가정이 살고 있는 서울 금호동의 한 아파트 18층이었습니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내다보면 정면으로 드러나있는 넓은 시야 오른편 끝에 남산과 서울타워가 보입니다. 그런데 제가 한국에 도착해서 거의 일주일간 서울타워를 선명하게 볼 수가 없었습니다. 미세먼지 때문입니다. 분명히 거리상으로 선명하게 보여야 할 남산의 나무들이나 서울타워가 일주일쯤 지나고 공기가 깨끗해지니 꽤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서울타워가 보인다는 사실보다 더 놀라운 것은 서울타워 옆쪽 산 봉우리 위에 있었던 송신탑이었습니다. 미세먼지가 심한 날에는 희미하게도 보이지 않던 송신타워가 거기 있었던 것입니다. 저게 저기 있었네 하고 깜짝 놀랐습니다. 분명 가시권 안에 있던 타워이고 작지도 않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 믿어지지도 않을 만큼 선명하게 눈 앞에 드러난 타워를 보며 분명히 거기 있었던 그것을 볼 수 없게 만든 미세먼지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다시 한 번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거기 있는데 시야가 가리워져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 얼마나 많을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영적 미세먼지가 잔뜩 끼어있는 세상입니다. 그래서 분명히 거기 있는 것들이 보이질 않습니다. 거기 있는 아파하는 한 영혼, 거기 있는 사라져가는 아름다운 가치, 거기 있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문화, 거기 있는 사단의 공격, 거기 있는 시대의 아픔, 거기 있는 자연에 드러난 창조의 신비, 거기 있는 죄의 참담함, 거기 있는 감사할 이유들, 거기 있는 눈물을 흘릴 이유들 등등 분명히 거기 있는데 영적 미세먼지 때문에 보이질 않고 또 보지 못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아마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이 세상을 덮고 있는 영적 미세먼지는 걷히지 않을 것입니다. 어두운 세상을 살 것입니다. 이 어두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음이라는 시력을 허락하셨습니다. 믿음이라는 시력으로 그 세상을 보는 사람들에게는 거기 있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믿음의 시력이 좋아질 수록 육신의 시력으로 보는 것보다 더욱 선명하게 거기 있는 것들을 볼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더욱 선명하게 거기 있는 것들을 보게 되면 육신의 눈으로 보는 세상이 아닌 믿음의 시력으로 보는 것들로 인생을 정의하게 됩니다. 믿음의 시력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생기는 열망이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들에 압도되어 살아가며 삶의 공허와 인생의 덧없음에 어쩔 줄 모르는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고자 하는 열망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들에 압도된 인생길의 끝에 어떤 마지막이 기다리고 있는 지 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완연한 가을입니다. 추수의 계절입니다. 한 해의 삶을 돌아보며 하나님 앞에 어떤 열매를 드릴 수 있을 지를 고민해야 하는 때가 되었습니다. 영혼의 추수보다 귀한 것은 없을 것입니다. 거기 있었던 것들을 보게 된 우리가 여전히 거기 있는 것들을 보지 못하는 그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아름다운 이 계절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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