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을 그리워하는 인생

September 30, 2018

지난 월요일에 저희 가정이 이사를 하였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미국에서의 26년간 이민생활 가운데 22번째 이사였으며 8년째에 접어든 결혼생활 가운데 6번째 이사입니다. 미국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것도 쉽지 않은데 평균적으로 한 곳에 1년 남짓 밖에 살지 못했다는 사실이 이민생활의 정처 없음을 더욱 부각시키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서울 수유리에서 싱가폴의 앙모쿄로, 앙모쿄에서 서울 사당동으로, 사당동에서 캘리포니아의 글렌데일로, 글렌데일에서 샌디에고로, 샌디에고에서 리버사이드로, 리버사이드에서 애나하임으로, 애나하임에서 텍사스의 덴튼으로, 덴튼에서 얼빙으로, 얼빙에서 캐롤튼으로, 캐롤튼에서 프리스코로 옮겨왔습니다. 더 큰 집에서 살기를 원했거나 더 좋은 지역에서 살기 위해 이사를 했던 것도 아니고 그 이유들이 부모님의 비지니스 상황, 학교, 취직, 결혼, 교회 사역과 경제적 상황, 집주인의 횡포 그리고 벼락까지. 어쩔 수 없는 이사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이렇게 돌아보니 참 많이도 이사를 다녔습니다.


‘사람이 그렇게 이사를 자주 다니면 안정감이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사 때문에 학교를 옮겨 다니는 가정의 자녀들이 친구가 없거나 심리적으로 불안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죠. 그러나 돌아보면 한 곳에 오래 살면서 쌓은 추억이 주는 안정감 못지 않게 이사를 다녔기 때문에 쌓인 추억이 주는 은혜도 만만치 않음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이사를 다녔던 곳 마다 그곳을 보금자리 삼아 정리하고 정착하며 만들었던 아름다운 기억들이 있었습니다. 이사를 하는 과정 가운데 생긴 추억들도 적지 않습니다. 이삿짐 트럭으로 차고를 들이받았던 기억, 머리에 매트리스를 올리고 동생과 아파트 파킹랏을 경주했던 기억 등등 지금은 기억 한 켠에 아름답게 자리잡은 추억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사를 들어가면서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하나님께 드렸던 기도들이 응답된 은혜가 있었습니다. 한 곳에 오래 살면서 경험하는 은혜가 있다면 이사를 다니며 경험한 하나님의 신실하신 은혜가 삶을 지탱하는 강력한 능력이 되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짜피 이 땅 어느 곳도 진정한 영혼의 안식처가 될 수는 없기에 돌아갈 영원한 고향을 생각하며 인생의 여정 가운데 머무는 곳이 어디든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 은혜를 누리는 삶을 늘 살기를 다시 한 번 기도하게 됩니다.


지금 우리가 함께 나누는 히브리서 11장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믿음을 따라 살다가 죽었습니다. 그들은 약속하신 것을 받지는 못했지만, 그것을 멀리서 바라보고 반겼으며, 땅에서는 길손과 나그네 신세임을 고백하였습니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자기네가 고향을 찾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들이 만일 떠나온 곳을 생각하고 있었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들은 더 좋은 곳을 동경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곧 하늘의 고향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하나님이라고 불리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도시를 마련해 두셨습니다.


내가 머문 곳에서 안주하려 하는 우리의 바램과 서 있는 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원하는 우리의 바램 사이의 균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하는 말씀입니다. 아름다운 보금자리를 포함해 이 땅 어느 곳도 결코 천국이 될 수 없음을 깨닫는 동시에 환경에 상관 없이 우리의 삶에 천국의 은혜가 임하고 있음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인 것입니다. 또 한 번의 이사로 새로운 환경에서 이러한 말씀의 은혜와 천국의 능력을 더욱 바라고 또 누리는 그런 저와 저희 가정이 되도록 기도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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