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력

고난주간 특별 저녁예배를 드리는 동안 저희 쌍둥이들과 아직 두 살이 안 된 라솔이와 찬빈이가 엄마 아빠와 함께 예배에 참석을 해서 제 마음이 너무나 흐뭇했습니다. 특히 성금요일 저녁예배 때는 태어난 지 한달 된 민이와 5개월 된 시율이까지 9명의 자녀들로 교회가 시끌시끌 했습니다. 성금요일 예배를 거룩하고 정숙하게 드린다고들 이야기 하지만 저는 아이들로 시끌시끌한 분위기가 하나님의 마음을 더욱 기쁘게 해드렸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다른 이유들도 있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력이 아이들에게는 넘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왜 살아야 하는지를 특별히 고민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지를 고민하지도 않습니다. 생명력이 가지고 있는 호기심과 열정 그리고 관계성이 아이들에게는 언제나 넘칩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너무나 사랑스럽습니다.


우리도 전에는 다 아이들이었죠. 아이같이 철이 없거나 아이같이 순수한 마음을 지키며 사는 사람은 있어도 아이같은 생명력을 계속 가지고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육신을 갖고 살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에는 육신의 제약으로 인해 우리가 원래 가지고 있던 생명력을 점점 잃게 됩니다. 일주일 동안 찬빈이와 라솔이가 보여준 생명력을 저는 어른에게서 단 한 번도 본 일이 없습니다. 어느 누구도 예외 없이 그 생명력을 점점 잃어가다 그 생명력이 다 할 때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저는 죽어가는 사람들을 여러 번 봤습니다. 육신의 생명력이 다 하던, 마음과 정신의 생명력이 다 하던 생명력이 다 한 사람들은 어김 없이 죽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만 죽는 것을 본 것만은 아닙니다. 어릴 적 제가 키우던 강아지들이 제 눈 앞에서 죽는 것도 몇 번이나 보았습니다. 키우던 금붕어가 죽어가는 것도 봤으며 텍사스의 많은 불개미들을 죽여봤고 각종 벌레들은 거의 매일 죽이며 키우던 대나무가 죽는 것을 보며 너무나 가슴 아파했던 기억도 있습니다. 모두가 사람과 똑 같이 살아 생명력을 갖고 살던 생명체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강아지나 금붕어 그리고 벌레나 대나무는 죽으며 그 생명력이 복원될 거라 기대하며 죽지 않습니다. 죽음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생명력이 가지고 있는 보존 본능이 발휘돼 죽지 않으려 애쓰다 예외 없이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런데 사람은 다릅니다. 사람에게는 다른 생명체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생명력도 있지만 동시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자들에게 그 두려움을 이겨낼 소망도 함께 주셨습니다. 다시 살 것에 대한 소망입니다. 이 소망은 막연한 기대감이 아닌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한 확신입니다.

일주일간 금식과 육신의 불편함으로 기운없이 지내며 시끌시끌한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생명력이 참 부러웠습니다. 영원의 관점으로 보면 한 송이 꽃이 피었다 지는 듯한 인생의 여정에 부활에 대한 소망이 없다면 우리의 인생이 그저 죽기 싫어 몸부림 치는 모습으로 비쳐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아이 때 가지고 있던 생명력은 반드시 복원될 것입니다. 복원될 뿐 아니라 주체할 수 없는 생명의 기운이 영원토록 우리를 압도할 것입니다. 저는 그 날을 진심으로 기대합니다. 오늘 예수님의 부활이 주시는 생명에 대한 넘치는 소망과 확신이 프리스코 ONE WAY 교회와 함께 하길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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