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림의 영성

“나에게 능력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빌립보서에 기록된 바울의 이 고백은 크리스챤 운동선수들이 인터뷰 때 가장 많이 인용하는 구절이기도 합니다. 참 멋진 말입니다. 마치 예수님을 의지하기만 하면 나에게 불가능한 일은 없을 것 같은 믿음을 유도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고백은 배고플 때나 배부를 때나 자족할 수 있는 능력을 주 안에서 발견한다는 바울 사도의 누림의 영성에 관한 고백입니다. 배 부를 수 있는 환경을 열어주신 주님께 감사함으로 그 환경을 누리고 배가 고픈 환경이라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주님의 선한 인도하심을 신뢰하기에 늘 감사할 수 있게 되었다는 바울의 탁월한 영성이 잘 표현된 고백인 것을 감안하면 많이 오용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구절입니다. 누림의 영성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추구해야 할 삶의 방법입니다. 즉 누릴 줄 모르는 그리스도인들은 아직 삶의 방법을 깨닫지 못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 이 시대의 Cogito를 ‘소비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라고 했던 것 같은데요. 인생을 사는 법, 즉 누리는 법을 모르고 축적하고 소비하는 것에 취해버린 이 시대를 잘 표현하는 한 마디인 것 같습니다. 소비하려면 축적해야 합니다. 소비하려면 나누기 어렵습니다. 소비하려면 감사하기도 어렵습니다. 감사의 계절 11월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누린다는 것은 곧 감사하며 나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소비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누리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주신 것에 감사하고 만족하며 내 이웃과 더불어 누리는 것을 기뻐하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영원의 Perspective 가졌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왔고 또 하나님께로 돌아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는 이렇게 팬데믹으로 온 세상이 저주를 받는 것 같은 때에 감사의 조건이 도대체 어디 있느냐고 말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에서의 소유가 아무리 많아도 “주 예수여 속히 오시옵소서” 라고 기도하며 이 땅에서 아무리 궁핍하여도 “주님 한 분 만으로 나는 만족합니다” 라는 고백을 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 누림의 영성을 소유한 사람은 인생을 사는 법을 깨달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죠. 감사의 계절 11월에 모든 것이 척박하게 보이는 때이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것들을 감사함으로 누리고 또 아낌없이 나눌 수 있는 “나에게 능력을 주시는 분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프리스코 ONE WAY 교회가 되기를 소망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