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오른쪽 어깨 뒷면에는 커다란 점이 있습니다. 꼬마였을 때 소매가 없는 셔츠를 입고 다니면 어른들께서 복점이라며 한 번 만져보자고 하셨던 적이 많습니다. 평생을 함께 해 온 점이기 때문에, 더구나 제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부분에 있는 점이라, 커다랗지만, 그렇다고 그 점이 불편하게 느껴진다던지 아니면 보기가 싫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내가 “당신 나중에 한국 나가게 되면 그 점을 빼는게 좋겠어” 라는 말을 하는 바람에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도 어떤 의사분이 그런 점이 종양으로 변할 수 있으니 빼라는 말을 하기는 했었지만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지10여년이 지난 지금도 그런 면에서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점을 빼는 것이 좋겠다는 아내의 말에, 어렸을 때 어른들이 왜 그 점을 복점이라고 했는지를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제 점은 크긴 크지만 옷을 입으면 보이지 않는 곳에 있기 때문에 아무런 불편함이 없지만 예를 들어 얼굴이나 목 또는 팔이나 다리에 그런 큰 점이 있는 분들은 그 점 또는 점들이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외모에 예민한 요즘 같은 세상에는 더욱이 그렇겠죠. 아마도 콤플렉스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을 것입니다. 점을 뺄 방도가 없었던 예전에는 그 점을 평생 가지고 살아야 했을 것입니다. 아마도 점 때문에 마음에 수치심이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그 점을 ‘복점’으로 불러주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역사적인 근거가 있는 이야기인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만약에 그런 의미에서 그렇게 보기 싫게 큰 점을 우리 조상들이 복점으로 불러준 것이라면 참 따뜻한 마음이 담겨져 있는 전통이 아닐까 생각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제 어깨의 점처럼 드러나지는 않지만 감추고 싶은 마음의 상처나 아픔 그리고 수치로 여겨지는 무언가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완벽하지 않은 세상에 태어나면서 또 그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쩔 수 없이 안고 살아가는 그런 ‘점’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 ‘점’들을 감추고 싶고 또 잊고 싶지만 우리 인생의 주권을 가지신 분께서 실수로 우리에게 ‘점’을 안겨주신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실수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우리가 ‘점’을 가지게 된 것이라면 하나님은 그 ‘점’이 바로 ‘복점’ 이라고 우리에게 말씀해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 점 때문에 아프다고, 창피하다고, 감추고 싶다고 느낄 수 있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게 되므로 ‘복점’ 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교회라는 커뮤니티는 하나님께서 ‘복점’ 이라고 하신 것들을 자신의 약점들로 정직하게 인정하고 겸손하게 서로를 공감해주기 때문에 더욱 단단해지는 커뮤니티입니다. 그런 커뮤니티를 가지지 못한 사람들은 ‘복점’을 감추고 창피해 하며 시간이 지날수록 왜곡되어 지나치게 쪼그라들거나 지나치게 부풀려진 자기 정체성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 인생은 외롭고 슬픈 인생입니다. 커뮤니티의 의미가 더욱 소중하게 다가오는 이 시절에 하나님의 안목으로 내가 가진 ‘점’을 ‘복점’이라 믿으며 또 다른 사람의 ‘점’도 ‘복점’으로 믿고 그렇게 불러주는 개인들, 가정들 그런 교회가 되기를 소망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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