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도의 경험

내년이면 미국 생활 30년이 되는데도 불구하고 미국에서 사용하는 수치들이 낯설 때가 있습니다. 여전히 100 피트 보다는 100 미터가 친숙하고 100 파운드 보다는 100 킬로그램이 친숙하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온도 만큼은 화씨(Farenheit) 100도가 주는 느낌이 와 닿습니다. 텍사스에서 살아가며 100도가 넘을 때와 넘지 않을 때 피부로 느끼는 것이 매우 다르다는 것을 일상 중에 늘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실내 온도를 몇 도로 세팅해 놓을 것인지, 외출할 때 어떤 옷을 입을 것인지를 판단할 때 늘 화씨 온도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번 주말 온도가 20도, 15도, 10도, 0도 이렇게 되고 보니 여전히 낯섭니다. 영하의 온도를 생각할 때는 섭씨로 0도, 영하 5도, 영하 10도, 영하 15도가 더 친숙합니다. 화씨 0도가 어느 정도의 추위인지 상상이 잘 안 됩니다. 왜 그런지 생각해봤더니 경험해본 적이 별로 없어서입니다. 서울에서 영하 15도가 어떤 느낌이었는지는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합니다. 손과 발에 감각이 없고 귀와 코가 잘려 나가는 듯한 고통이 느껴지는 추위로 저에게 기억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화씨 0도 라고 하면 무엇을 예상해야 될 지 잘 모르겠습니다. 미국에서 화씨 0도를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경험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할 수는 없지만 경험해보지 못한 것을 안다고 말하기는 정말 어렵습니다. 이것은 추위를 느끼는 감각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음식의 맛을 표현할 때 아무리 생생한 언어들로 표현을 한다고 해도 그 맛을 경험해보지 못하면 맛을 알 수는 없습니다. 상상은 가능하지만 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아는 맛이 무섭다고 하죠. 시각, 촉각, 후각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또 경험했다고 다 아는 것은 아닙니다. 추위에 대한 경험이나 맛에 대한 경험이 주관적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가 경험한 것을 뒷받침해주는 객관적인 수치나, 데이터가 필요합니다. 경험이 주는 익숙함과 객관적인 자료가 주는 근거가 만나야 실히 안다고 할 것입니다.


이야기가 이쯤 진행되면 제가 추위나, 맛에 대하여 말하려는 것이 아님을 눈치 채셨을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말하려는 것이죠. 성경을 공부하여 지식이 쌓여도 삶 속에서 실천해보지 않으면 나의 것이 되기 어렵습니다. 사랑을 글로 배울 수 없듯이, 신앙도 글로 배울 수 없습니다. 경험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많이 아는 것과 하나님을 아는 것이 다르듯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잘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본 받기 위해 애써야 합니다. 그래야 내가 믿고 아는 예수님을 전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의 지식이 부족한 사람들은 겸손히 배우기를 애써야 하며 실천의 경험이 부족한 사람들은 대가를 치루더라도 실천해봐야 합니다.


30년 미국생활에도 익숙하지 않았던 영하 날씨의 화씨 온도가 이번 추위를 경험하면서 많이 익숙해질 것 같습니다. 그런데 화씨 온도에 온전히 익숙해지기 전에 삶이 끝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는 훨씬 더 친숙해질 뿐 아니라 세상 어떤 것 보다 하나님과 친밀해지는 제가 되기를 기도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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