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2021년도 School Year 가 끝이 나고 여름 방학에 들어갔습니다. 어떤 관점으로 보아도 정말 특별한 학년을 보낸 것은 틀림이 없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저희 부부는 학년말을 앞둔 한 달쯤 전에 처음으로 쌍둥이의 담임 선생님 얼굴을 스크린을 통해 처음으로 뵈었습니다. 물론 학년을 시작할 때 마스크를 쓰신 얼굴을 뵈긴 했었지만 말입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보이지 않는 부분을 소리나 냄새 등을 통해 상상하는 이미지로 채워 넣기 때문에 상상했던 것과 다른 얼굴에 짐짓 놀라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하는 것은 팬데믹에서만 경험하는 특별한 현상이라고 하겠습니다. 대면 수업에 참석하던 아이들은 선생님의 마스크 벗은 모습을 아주 가끔씩만 뵈었을 것이고 온라인 수업을 하던 자녀들은 스크린을 통해서만 선생님과 친구들의 얼굴을 볼 수 있었습니다. 팬데믹이 가져온 비정상적인 상황이었습니다. 이것을 비정상적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단순히 팬데믹 속의 모든 상황이 비정상이기 때문은 아닙니다. 상황이 좋지 않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마스크를 착용한 상태로 또는 스크린을 통해 만나 수업을 듣고, 회사 근무를 하고, 예배와 성경공부를 진행해왔지만 이것은 정상적인 방법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얼굴 표정을 통해, 몸짓을 통해, 풍기는 에너지를 통해 때로는 사용하는 향수의 향기나 비누향을 통해 전하고 나누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사람은 육적인 존재이면서 동시에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함께 거함’의 대면 만남을 통해서만 경험할 수 있는 신비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런 사람들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도 그래서 믿으라고만 하시지 않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통해 ‘함께 거함’을 백성들에게 보여주셨습니다. 나아가 인간의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사람들과 함께 거하시는 하나님으로 구속 사역을 완성하셨습니다. 창조의 원형을 잃어버려서 결코 온전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함께 거함’을 통해서 경험되는 신비는 여전히 우리 안에 남아 있습니다. 이것이 스크린을 통한 만남이 ‘함께 거함’을 절대로 대신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이메일이나 문자가 손 편지를 대신하게 된지 오래 됐지만 여전히 손 편지의 감동을 느끼는 이유가 비슷할 것입니다. 아무리 영상을 통해 지금 먹고 있는 음식의 맛을 전달하려고 해도 같은 식탁에서 함께 음식을 먹는 경험을 대신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예배도 물론 마찬가지입니다. 영상 예배가 대면 예배를 절대로 대신할 수 없습니다. 영상을 통해 예배를 들릴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피치 못할 상황이 있지만 그것은 극히 예외적인 상황이라고 하겠습니다. 예배는 하나님과의 만남이기도 하지만 사람과의 만남입니다. 예배는 정보를 교환하는 시간이 아니라 공동체가 하나님 앞에 함께 나아가는 총체적 경험입니다. 내 옆에서 열심히 기도하는 사람을 통해 전달받는 신비한 무언가를 영상으로는 경험은 고사하고 설명하기조차 어렵습니다. 함께 찬양을 부르며 발산되는 에너지는 영상으로 대체될 수 없습니다. 목사의 침이 튀는 즈음에서 설교를 들어야 은혜가 있다는 우스개 소리는 괜히 하는 말들이 아닙니다. 예배는 공동체적 교제이며 헌신이며 경험입니다.
아직 세계 곳곳에는 팬데믹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이 있습니다.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때로는 후원하는 것이 우리의 도리일 것입니다. 하지만 백신 접종을 통해 감염의 위험성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는 지금 어쩔 수 없이 비정상적으로 진행해 오던 것들을 다시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가기 위해 애쓰는 공동체적 노력이 절실합니다. 이제 다시 삶의 역동성과 적극성을 회복할 때입니다. 교우 여러분 모두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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