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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철 목사

한계나 제약을 만나더라도

지난 주에 운전을 하며 한국 라디오를 듣다가 클라라 주미 강이라는 바이올린 연주자의 인터뷰를 듣게 되었습니다. 5살에 독일의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하고 7살에 줄리어드에 입학했던 그는 13살의 나이에 농구팀 트라이 아웃엘 갔다가 새끼 손가락이 부러지는 사고를 당합니다. 전신마비를 하는 수술 후 3년간 바이올린을 할 수 없어서 CCM 을 작곡하여 노래를 부르는 가수가 되었던 적이 있다고 합니다. 후에 다시 바이올린을 할 수 있게 되어 노래를 계속 하지는 않았지만 한 순간도 음악을 떠난 적은 없었다는 그녀의 인터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다음은 한계와 제약에 관한 어떤 목사님의 글입니다.


한계, 장애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그 한계와 장애가 새로운 길을 열어준다. 4명의 친구가 중풍병 환자를 예수님께로 데리고 온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접근할 수 없었다. 예수님이 계신 집의 지붕을 뚫고 병자가 누운 상을 달아내렸다. 막힘과 장애에서 창의적인 새 길을 찾은 것이다. 제약조건이 예술을 만든다. 시를 쓸 때, 운을 맞춰서 써야 한다. 두운, 각운을 맞춰야 한다. 그래야 리듬을 타게 되고, 더 마음 속에 와닿는 감동이 있는 것이다. 젊은 시절 피카소에게 슬럼프가 찾아왔다. 피카소는 슬럼프를 이기기 위해서 스스로 한계를 정했다. 오로지 푸른 색 계열의 색만 사용해서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다. 이 방법을 통해서 슬럼프도 극복하고 새로운 미술 영역을 개척하게 되었다. 빈센트 반 고흐는 노랑색으로 해바라기를 그렸다. 제한이 그를 “노랑색의 화가”라는 칭호를 받는 독특한 자리로 이끌었다. 학창 시절 친구 중에 미술로 대성한 친구가 있다. 옛날에는 잘사는 아이와 못사는 아이의 구분이 크레파스에 있었다. 잘 사는 아이는 60가지 색이 있는 크레파스를, 못사는 아이는 12가지 색의 크레파스를 사용했다. 60가지 색을 사용한 아이는 현란하고 복잡한 그림을 그렸다. 12색의 아이는 색을 다 쓸 수 없었다. 색을 섞어서 새로운 색을 만들고, 여러 색을 점묘기법으로 묘사하는 법까지 터득하게 되었다. 색이 많지 않은 크레파스는 제약조건이다. 거기서 창의력이 나왔다.성탄절에 많이 부르는 “기쁘다 구주 오셨네.”라는 찬송이 있다. 헨델 작곡에 로웰 메이슨 편곡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실상은 헨델의 노래에서 힌트를 얻어서 로웰 메이슨이라는 미국 사람이 작곡한 것이 맞다고 한다. 메이슨은 헨델 노래를 엄청나게 들었다. 헨델은 음계의 오르내림만을 사용해서 노래를 만드는 것을 즐겼다고 한다. 단순한 음계지만, 박자를 달리해서 탁월한 음악을 만드는 일들 했던 것이다. 내림음계 ‘도시라솔파미레도’는 단순한 음계이다. 그런데 박자를 달리해서 부르면 “기쁘다 구주오셨네”가 된다. 제약조건에서 강렬한 감동을 주는 음악이 나오는 것이다. 돈이 많고, 모든 지원을 다 해주면, 탁월함은 안 나온다. 창의력은 언제는 장애와 제약 조건 속에서 나오는 것이다.


개천에서 용 나오는 시대는 지났다고 합니다. 대단한 성공을 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지원과 후원이 있어야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대단한 성공이 아니더라도 하나님께서 주신 우리 안에 담겨진 가능성들을 펼쳐가는 일에 이런 저런 핑계는 대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한계나 제약을 만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창조적인 도전을 계속해 나가는 우리 교회가 되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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