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을 지나오면서 코로나에 감염되어 고통 당하는 분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을 당했다는 분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감염을 걱정하는 분들의 이야기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마다 “참 어려우시겠군요”, “기도하겠습니다”, “힘 내시길 바래요”등의 답을 해드렸지만 사실 제가 코로나에 걸린 경험이 없고, 팬데믹 때문에 경제적 어려움에 처하지도 않았으며 감염을 걱정해서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한 일도 많지 않았기 때문에 공감이 더욱 필요했던 상황 속에도 충분히 공감하지 못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백신을 맞으면서도 우려하는 분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 제 안에 큰 걱정이 없었기 때문에 공감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백신을 맞은 쪽 팔이 아프다는 아내의 말에도 사실 제가 백신을 맞고도 팔이 별로 아프지 않았기 때문에 충분히 공감하질 못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상대의 아픔을 인정해주는 정도였습니다. 아마도 이것이 저 혼자만의 이야기는 아닐거라 생각합니다. 사실 그 아픔과 걱정을 다 안다고 해도 교만한 것이고 또 모른다고 하면 냉담한 것이 우리의 공감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한계입니다. 이민의 삶을 살아가는 동안 상처와 아픔의 스토리 한 가지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 교회에도 저마다의 상처와 아픔의 스토리를 가슴에 안고 살아가지 않는 교우는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주 안에 형제자매된 지체들로서 서로의 아픔을 가슴으로 보듬어주고 위로하고 격려하는 공동체가 되어야함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서로를 이해하고 품어주어도 가장 깊은 그 밑바닥에 자리잡고 있는 응어리들을 온전하게 풀어줄 수는 없을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최선은 늘 부족하기 때문이죠.
그러나 우리의 상처난 마음들을 온전히 치유하고 회복시켜 주실 분은 하나님 단 한 분 계십니다. 예수님이십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안 되지만 예수님께는 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는 모든 점에서 우리와 마찬가지로 시험을 받으셨지만, 죄는 없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담대하게 은혜의 보좌로 나아갑시다. 그리하여 우리가 자비를 받고 은혜를 입어서, 제때에 주시는 도움을 받도록 합시다. (히브리서 4:15-16, 새번역) 하나님은 우리를 있는 그대로 용납하시기 위하여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우리 죄를 짊어지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아픔 당하는 사람들을 공감하는 하나님이 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부활의 소망을 주셔서 이 땅의 모든 아픔과 근심들이 그 소망을 압도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교회에 위임된 하나님의 권위가 은혜와 위로와 소망으로 성도들에게 흘러갈 때 치유와 회복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것이 교회에 주어진 사명입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회복이 필요합니다. 소망이 절실합니다. 교회가 감당해야 될 소중한 사명이 여기에 있습니다. 예배 가운데 경험되는 하나님의 임재로 인하여, 말씀과 기도 가운데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 공동체의 위로와 격려를 통하여, 삶에 부어주시는 은혜를 인하여 삶의 모든 상처들, 아픔과 응어리들이 나음을 입게 될 줄로 믿습니다. 이제는 함께 모여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나누며 하나님께서 주신 소망을 많은 사람들과 나눠야 될 때입니다. 개인의 위로도 소중하지만 분명히 한계가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로 우리의 사정을 다 아시는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해 일하신다면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통해 회복될 것입니다. 포스트 팬데믹 시대에는 우리 모두가 그 일에 꼭 쓰임 받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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