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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철 목사

속은 기분 안 드는 교회

“The sign is wrong.” 왜 싸인의 가격과 다르냐는 질문에 직원은 짧게 대답하였습니다. Colorado 의 Royal Gorge Bridge라는 곳을 방문했다가 엄마가 잠깐 없는 사이 마실 것을 사달라는 아이들의 독촉을 못 이겨 줄을 섰습니다. 아이들이 원하는 ICEE 음료가 하나에 $5.99 로 싸인에 표시되어 있었습니다. 말도 안 되는 가격이라 하나 사서 둘이 나눠 마시라고 할까 하다가 기왕에 멀리까지 왔으니 기분 좋게 마시라고 큰 맘 먹고 두 개를 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직원이 $16.80 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에 얼마냐고 제가 되물으니 그 때 한 말이

“The sign is wrong” 이었습니다. 뒤에 줄도 길고 아이들도 옆에 있고 해서 따지려는 마음을 접고 그냥 pho 한 그릇 가격의 ICEE 를 각각 하나씩 사주었습니다. 아마도 휴가철이기도 하고 관광객도 많고 해서 임의로 가격을 올린 것이 아닐까 생각되었습니다. 아이들 기분 좋게 해주려고 한 일에 저는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단순히 가격이 비쌌기 때문이 아니라 상술에 속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상술에 속으면 기분이 별로 좋지 않습니다. 세상은 원래 그런 곳이기 때문에 그러려니 하며 살지만 막상 속는 당사자가 될 때 기분은 별로입니다. 씨알 좋은 과일로 덮여 있는 과일 상자를 구입했는데 안 보이는 곳에 깔려 있던 썩기 직전의 과일들일 때 속은 기분이 듭니다. 육질 좋은 부위로 덮여 있는 고기 패키지 밑에 깔려 있는 비계 덩어리들을 볼 때 속은 기분이 듭니다. 파격적인 가격으로 디스카운트 된 자동차 광고를 보고 찾아갔는데 프로모션으로 디스카운트 된 딱 한 대가 방금 전에 팔렸다고 할 때 속은 기분이 듭니다. 식당에서 먹음직스럽게 보이는 메뉴속 사진과 전혀 다른 비주얼과 맛의 음식이 나올 때 속은 기분이 듭니다. 세상의 상술에 속는 일은 늘 있는 일이지만 이렇게 속은 기분이 드는 것은 물건이나 서비스를 구입할 때 뿐이 아닙니다. 뭐든지 다 할 줄 아는 것 같이 인터뷰한 직원이 뭐든지 버벅거릴 때 속은 기분이 듭니다. 소개받을 때 첫인상이 매우 좋았던 사람이 비겁하고 이기적인 속내를 드러낼 때 속은 기분이 듭니다. 처음 책임을 맡을 때는 목숨을 받쳐 헌신할 것 같던 사람이 이런 저런 핑계들로 꽁무니를 뺄 때 속은 기분이 듭니다. 이렇게 속은 기분이 들 때 세상이 우리에게 던지는 한 마디가 아마도 “The sign is wrong” 인 것 같습니다.


교회는 “The sign is wrong” 이라고 둘러대는 공동체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교회의 Sign 은 다름아닌 십자가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는 세상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파격적 사랑’과 ‘고귀한 헌신’과 ‘영원한 소망’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라는 Sign 을 걸어 놓고 예수님의 사랑과 헌신과 소망은 증거하지 않고 ‘몸집 불리기’ 나 ‘시스템 자랑’이나 ‘인맥 늘리기’ 와 같은 세속적 욕망만을 보여준다면 구원이 필요해 교회를 찾는 사람들에게 속은 기분만 안겨줄 것입니다. 십자가라는 Sign 을 내건 교회라면 응당 예수를 배우고, 예수를 본받고, 예수를 전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아무에게도 속은 기분 들게 하지 않는 그런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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