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 주는데 자동차에 찍힌 바깥 온도가 18도를 가리킵니다. 밖이 매우 추우니 학교에서도 옷 잘 입고 있으라는 저의 말에 아이들은 눈이 왔으면 좋겠다고 답합니다. 작년2월에 화씨0도로 온도가 떨어졌을 때처럼 또 눈이 많이 내려서 학교 안 가면 좋겠다고 합니다. 밖에서는 눈 썰매를 타고 집안에서는 텐트를 치고 지냈던 것이 너무 재미 있어서 또 그렇게 하면 좋겠다고 합니다. 전기가 안 들어와 가스요금 폭탄을 안겨준 Fireplace 피우고 태블릿을 하며 네 가족과 강아지가 함께 텐트에서 잤던 것이 너무 재미있었다고 말하는 아이들을 학교에 떨궈주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같은 일에 대한 기억이 이렇게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온도가 떨어지고 폭설로 인해 전기가 끊기고 운전을 할 수 없는 상황을 어른인 저는 가족들의 생명이 위협받은 사건으로 기억하는 한편 같은 상황을 재미있었던 추억으로 말하는 아이들의 상황 해석이 참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음식을 할 수 없어서 프로판 가스를 구하러 눈길을 헤매고 다녔던 기억이 강렬한 저로서는 ‘세상 물정 모르는 천진난만한 아이들이니 당연히 그렇겠지’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또 한 편으로는 같은 상황, 같은 사실을 어떻게 해석하는지가 상황이나 사실에 대한 인식 자체를 전혀 다르게 만들 수 있다는 것도 생각하게 됩니다.
어른이라 세상 물정을 잘 알아서 위험의 순간을 위험하게 여기는 것은 당연하기도 하고 또 필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부모의 보호 속에서 위험을 감지하기 보다는 재미있었던 일로 기억하는 것처럼 철저한 하나님의 보호를 인지하는 사람들은 같은 상황을 위험이 강조된 기억보다는 추억할 수 있는 한 페이지로 인지하고 기억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세상 물정을 안다고 하지만 어른들도 미처 감지하지 못하고 지나가는 위험의 순간들이 얼마나 많을까요? 우리는 감지하지 못하지만 우리를 보호하시는 하나님께서 치열하게 일하고 계시는 상황들이 얼마나 많을까요? 물론 위험에 대하여 지나치게 무감각해서도 안 될 것입니다. 하지만 같은 상황을 대하며 얼마든지 하나님의 은혜와 보호를 인지하며 기쁨과 감사와 만족의 태도로 지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은 변하지 않지만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역시 믿음이 담긴 해석이라는 점을 다시 깨닫는 아침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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