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오는 인생길

미국을 자동차로 여행하다 보면 정말 길게 쭉쭉 뻗은 하이웨이들을 만나게 됩니다. 이번에도 캘리포니아를 차로 다녀오면서 텍사스와 뉴멕시코와 아리조나를 가로 지르는 20번 하이웨이와 10번 하이웨이를 오랜 시간 달렸습니다. 그런 하이웨이를 달리다 보면 이상한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사실 자동차는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지만 차를 운전하는 제 입장에서 보면 마치 길이 달려 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입니다. 쭉 뻗은 하이웨이를 핸들을 전혀 움직이지 않은 채로 3시간 정도 달리다 보면 말입니다. 운전을 하기는 하지만 크루즈 컨트롤에 속도를 세팅해 놓고 운전대는 잡기만 한 채로 가만히 앉아 있으면 되는 운전이기에 눈을 뜨고 있는 것 외에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되는 듯 느껴집니다. 운전자는 그저 시트에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하면 전진을 하는 것입니다. 자동차가 앞으로 가는 것인지 길이 달려와 발 밑으로 지나가는 것인지 착각이 될 정도로 모든 것이 정적으로 느껴지지만 자동차 바퀴와 길의 마찰을 통해 전진이 이루어집니다.


그런 느낌이 들 즈음 인생길이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인생에 굴곡도 많고 노력하고 애써야 하는 순간들이 너무나 많지만 우리가 인생길을 그렇게 빠르게 달려가는 것인지 인생길이 빠른 속도로 우리 발 밑을 지나가는 것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느낌이 듭니다. 나이가 드는 것일까요? 인생길이 우리 발 밑으로 지나가는 그 빠른 속도를 생각하면 과연 그것이 내가 빨리 달리기 때문일까 하는 생각이 드는것은 저 만의 생각은 아닐거라 생각합니다. 내가 빨리 달리기 위해 애쓰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속도로 인생이 진행되는 것은 길이 달려오기 때문일 수 밖에 없는 것 아닐까요?


일주일 캘리포니아엘 다녀왔더니 분명히 겨우내 아무 변화가 없던 앞마당 뒷마당의 잔디와 각종 잡초들이 무성하게 자라 있었고 제 창문에서 보이는 뒷집 나무는 하얀 꽃으로 새 단장을 해버렸습니다. 그 나무에 꽃 몽우리가 맺히는 것도 보지 못한 것 같은데 말입니다. 여행하면 큰다는 말이 정말인지 분명히 일주일 내내 함께 다닌 아이들은 낯설 정도로 커버린 것 같고 일주일 만에 본 하돌이는 키가 훌쩍 커버린 것 같았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근심하면서 교회가 직면하는 새로운 현실과 온라인 예배 시스템 구축이라는 과제를 가지고 오랜 시간 끙끙거렸던 것이 분명한데 팬데믹 시국의 1년이라는 시간이 마치 송두리째 사라져버린 듯한 느낌이 듭니다. 그 시간들이 그렇게 빨리 지나갈 정도로 빠르게 달린 것 같지가 않은데, 그저 운전대를 잡은 채로 눈을 뜨고 있었던 것 같은데 발 밑으로 지나간 인생길의 속도는 하이웨이를 달린 자동차의 속도 몇 배는 되는 것 같습니다. 나이가 드는 것일까요?


그렇게 빨리 발 밑으로 지나가 버리는 인생길의 현실이 달갑던지 그렇지 않던지 저의 느낌과는 상관 없이 휙 하고 지나가버릴 것이 분명합니다. ‘무언가 이루어야 하는데’, ‘애들 더 크기 전에 집도 장만해야 하는데’, ‘더 늦기 전에 노후를 준비해야 하는데…’ 그런 생각 하느라 그 아까운 시간 낭비하지 않고 미약하지만 할 수 있는 작은 일들을 하려고 합니다. 전속력으로 달려와 제 발 밑으로 지나가는 인생길을 아쉬워만 하면서 살지는 않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한 주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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