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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철 목사

넘어져 상처가 나면

2주전 토요일 오후에 쌍둥이들과 모처럼 외식을 하려고 차고에서 후진하여 나오는데 차에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구입한지 이제 1년 밖에 되지 않는 차에 무슨 심각한 문제가 생겼나 하는 생각에 순간적으로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소리가 들린 밴의 밑바닥 쪽을 길에 엎드려 살펴보니 차체를 보호하는 커버가 찢어져서 바닥까지 늘어져 있었습니다. 운전을 할 때 그 커버가 바닥을 긁어 그런 소리가 났던 것입니다. 큰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쌍둥이들과 식당으로 향했습니다. 왜 차가 그렇게 됐을까 운전하며 생각하다 문뜩 그 날 새벽 일이 생각났습니다. 날씨 때문에 형제들과 약속되어 있던 운동모임을 취소하고 혹시라도 섭섭하신 분들이 있을까 하여 커피 한 잔 하실 분들은 가까운 스타벅스로 나오시라는 문자를 하고 그곳으로 향했습니다. 동트기 전 새벽이라 깜깜했고 바람이 차를 때려 운전대를 꽉 잡은 채로 Coit 길을 올라가던 중에 무언가를 밟으며 차가 덜컹했고 차 밑바닥을 무언가 강타하는 느낌을 받았지만 별것 아니겠지 하고 약속장소로 향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도 차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은 기억이 없었습니다. 생각해보니 바람이 너무 세게 불어 커버가 바닥을 긁는 소리도 듣지 못했던 것입니다.


간단한 수리가 분명했지만 정비소로 가져가면 최소 몇 백 달러를 요구할 것이 분명해서 직접 고쳐보려고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승용차보다 상당히 무거운 밴이라 일반 리프트 잭으로는 차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양쪽 타이어 밑에 받침대를 놓고 차를 움직여 10인치 정도만 올리면 기어서 밑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받침대를 구입하였습니다. 드디어 지난 월요일 도착한 받침대를 사용하여 기어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차를 올리고 차 밑을 자세히 볼 수가 있었습니다. 알루미늄과 두꺼운 천으로 된 2중 커버가 찢어진 틈으로 제가 밟고 지나간 무언가의 일부가 박혀 있었습니다. 플라스틱 파편이었습니다. 길 공사를 하다 미처 마무리 하지 못하고 방치해둔 플라스틱 싸인이 바람 때문에 길 쪽으로 튀어 나와 있던 것을 제 차가 밟고 지나간 것이었습니다. 찢어져 말려 들어간 알루미늄 커버를 조심스럽게 피고 천 커버와 강력 접착제로 접착한 후 찢어진 부위 전체를 공업용 테이프로 잘 붙였습니다. 찢어진 상처에 반창고를 붙이듯 수리를 마치고 기어 나왔습니다.


차를 그렇게 수리를 하며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저 맡기신 사역을 하려던 것 뿐인데 왜 나에게, 우리 가정에게 이런 일이 생기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지난 20여년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지나갔습니다. 생각이 지나치게 흘러가려던 순간 기도를 하며 생각을 멈췄습니다. 그날 일은 사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바람이 많이 불던 아침 하필이면 그 길을 달리다 차에 상처가 난 것이었습니다. 살짝 넘어진 것 뿐입니다. 이유를 다 알 수도 없습니다. 살다 보면 그런 일을 겪는 법입니다. 먼 길을 가던 중 우연히 돌부리 걸려 넘어진 것입니다. 불완전한 세상으로 난 길을 달리다 보면 다반사로 겪는 그런 일들에 지나치게 영적인 의미부여를 할 필요 없습니다. 사소한 일들이 눈을 가려 정작 봐야 될 것을 보지 못하면 자신만 손해이기 때문입니다. 상처가 나면 연고 바르고 반창고 붙이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냥 그렇게 말입니다. 내가 넘어져 상처가 났다고 길이 길이 아닌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길은 길입니다. 계속 가야 될 길입니다. 길을 계속 가다 보면 언젠가는 모든 일들을 다 이해할 수 있는 날도 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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